소향 작가님의 신간 소설집 <모르페우스의 문>은 표지부터 강렬합니다. 커다란 날개가 달린 사람이 신전같은 곳에서 출구쪽을 향해 서 있습니다. 노을진 하늘 풍경이 얼핏 보이는데, 신비롭습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날개 달린 사람도, 하늘 풍경만 보이는 바깥 풍경도 모두 호기심이 생기게 만듭니다. 평범하지 않아요.
저는 이 표지를 보면서 '날개 달린 사람은 날개를 펼쳐서 어디로 날아가고 싶은 것일까?', '신전 바깥에는 무엇이 있을까?'하는 물음을 던져 보았습니다. 이렇게 신비로운 표지는 소설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켰습니다. 제가 알지 못하는 어떤 세상이 소설 속에 나올까, 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소향 작가님은 2022년 김유정신인문학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23년과 2024년에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 지원과 발간 지원을 수혜했고, 과학과 역사, 예술이 어우러지는 글을 쓰고 있는 작가님입니다. <모르페우스의 문>에는 총 7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작가님은 '작가의 말'에서 단편소설을 좋아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적은 양이지만 강렬하고 깊은 맛을 내는 에스프레소처럼, 짧은 시간에 깊은 감동을 주고 상상과 해석의 여지를 주는 단편소설을 좋아한다고 하셨는데요. 이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들이 딱 에스프레소와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7개의 단편은 겹치는 내용 없이 모두 개성을 갖고 있습니다. 주인공, 내용은 모두 다르지만 7편은 'SF 장르'입니다. 소설의 배경은 모두 먼 미래입니다. 맨 처음 수록된 단편 <모르페우스 문>은 '타임 루프 설정'이 들어가 있는데요. 후반부에 반전이 있습니다. 흔히 영화나 소설에서 타임 루프가 들어가면 타임 루프 현상이 왜 일어났는지 설명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타임 루프가 이루어진 원인이 가장 중요합니다. 타임 루프로 학교 폭력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흥미진진했고, 읽으면서 가해자가 더 심한 벌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학교 폭력을 다루는 콘텐츠는 소설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늘 저에게 분노를 일으킵니다. 학교 폭력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다는 건, 그만큼 이 문제가 심각하다는 거겠지요. 학생들이 이런 작품들을 보고 학교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 작품인 <1919, 너의 목소리>에는 먼 미래에 나올 법한 '발명품'이 등장합니다. 바로 원하는 소리를 더 자세히 들을 수 있는 기계인데요. 주인공이 이 기계를 얻고 나서 겪는 일이 조금 으스스하면서 감동적이었습니다. 주인공이 의도치않게 1919년, 만세운동을 하던 여자 아이의 목소리를 듣게 되니까요. 만약 이런 기계가 있다면 저는 어떤 소리를 더 자세히 듣고 싶을지, 즐거운 상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세 번째 작품은 <달 아래 세 사람>입니다. 2021년 제7회 한낙원과학소설상 수상작품집 <항체의 딜레마>에 수록된 작품입니다. 보통 '과학'이라고 하면 최첨단 기술이라고 생각할 뿐, '조선 시대'에 과학이 발달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현대와 조선 시대를 오가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쳐 놓습니다. 주인공과 홍 유생의 짧은 만남, 설렘, 추억이 들어 있는 소설입니다.
네 번째 작품은 <샴>인데 매우 짧습니다. 파격적인 소설이에요. 겨우 두 페이지 밖에 아니니까요. 이 소설은 쌍둥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쌍둥이 중 한 명이 죽었을 때, 그 죽은 이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인데 주인공이 마치 다중인격을 겪는 것 같아서 읽는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었습니다.
다섯 번째 작품은 Schoolverse입니다. 먼 미래 학교가 어떤 모습일지, 가상의 학교 모습을 그린 소설입니다. 벌써 학교에서는 AI 교과서를 쓸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학교는 시대의 변화를 느리게 받아들이는 보수적인 공간인데도, 참 많이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Schoolverse에 등장하는 학교도 정말 미래에 있을 법한 학교의 형태입니다.
여섯 번째 작품인 <러닝 타임>은 먼 미래 '스포츠 경기'의 형태가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동안 장애인 올림픽이나 스포츠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이 작품을 읽고 나서 장애인 경기를 한 번쯤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작품에는 사고로 왼쪽 다리를 잃고 의족을 한 채로 육상 선수를 지망하는 학생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 학생에게 라이벌 의식을 하는 또 다른 학생이 등장하는데요. 이 둘의 관계가 나중에 우정으로 발전하는 게 감동적입니다.
일곱 번째 작품은 <미수 장례>입니다. 먼 미래, 장례식의 모습은 어떨지 상상해 볼 수 있는 소설입니다. 미수 장례는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의 장례를 미리 치르는 장례인데요. 부모를 잃고 상처를 받은 소년이 할아버지를 용서하고, 할아버지의 미수 장례를 치루어 주는 내용이 들어있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할아버지와 소년이 화해를 해서 다행이었지만, 역시 죽음을 다루는 작품은 저를 슬프게 만듭니다.
소향 작가님의 <모르페우스의 문>은 7작품 모두 빠질 것 없이 흥미롭습니다. 보통 단편 작품집을 읽으면, 어떤 작품은 좋고, 어떤 작품을 별로고 하는 호불호가 생기는 편인데요. 이 소설집은 전반적으로 모두 좋았습니다. SF 작품이면서 과학에 대해 너무 과도한 내용이 들어가지 않은 것도 좋았습니다. 최근에 읽은 한국 소설 중에서 소향 작가님의 소설이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이 소설집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이 즐거운 독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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