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영혼을 준 건 세 번째 사랑이었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지금부터 이천오백여 년 전, 공자가 편찬했다는 <시경>에 실린 노래다.
매실이 익을 무렵 그의 청춘도 무르익어 날 좀 데려가 달라고 님을 부른다. 중국의 어느 지방에서 매실을 따며 부르던 민요일 텐데, 초여름에 매실을 따는 고된 노동이 사랑 노래를 부르며 좀 가벼워졌으리라.


-<나에게 영혼을 준 건 세 번째 사랑이었지>, 최영미, 해냄, 33 p




깊어가는 가을과 잘 어울리는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바로 최영미 시인님의 <나에게 영혼을 준 건 세 번째 사랑이었지>입니다. 제목부터 로맨틱하면서 아름답습니다. 게다가 책 표지를 보고 환호가 절로 나왔습니다. 표지에는 클로드 모네의 그림이 있는데요. 책의 본문에도 낭만이 느껴지는 모네의 그림들이 삽화로 들어 있어서 시집을 읽는 내내 눈이 즐거웠습니다. 명시, 명화, 시인님의 해설이 잘 조화된 책이어서, 독서를 하는 동안 행복했습니다.

이 책을 쓴 최영미 시인님은 1992년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특히 시인님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대중에게 무척 잘 알려져 있는 인기 있는 시집이죠. 그리고 시인님은 문단 내 남성 중심 권력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확산시킨 정의롭고 멋진 분입니다. 문단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어도 쉬쉬하고 있던 문제를 시인님은 당당하게 언론에 공개했습니다. 그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고 멋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주눅들지 않고 시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시는 모습을 보며 참으로 배울 점이 많은 분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느 한 쪽에 부당하게 쏠린 권력을 싫어하는 시인님의 성향을 반영하듯, 이 책에 수록된 시들을 쓴 시인들은 '김남조, 로버트 브라우닝, 사디 사라즈, 조이스 킬머, 로버트 번스, 김경미, 마츠오 바쇼, 왕유, 이성복,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등입니다. 모두 국적도 다양하고, 성별도 편향적이지 않습니다. 헤르만 헤세처럼 원래 '소설가'로 유명한 작가들의 시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제가 잘 알지 못했던 시인들의 에피소드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짤막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의 에피소드를 읽고 나서, 다시 시를 읽어보면 더 이해가 잘 됩니다.


그리고 시인님의 시를 선별하는 넓은 안목과 외국어 감각이 인상적입니다. 보통 번역시들을 소개하면 번역된 내용만 언급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시인님은 원제와 우리나라에 의역된 제목, 번역의 비교 등을 통해 좀 더 탁월한 시의 번역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난해하거나 어려운 시가 없다는 것도 이 책의 장점입니다. 시인의 개성이 느껴지지만, 그 개성이 남은 알아들을 수 없는 치기어린 모습이 아닌, 누구나 공감할 수 있게 드러나 있습니다. 그리고 거짓으로 꾸며진 시가 아니라, 진솔함이 느껴지는 시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명시들만 쏙쏙 뽑아서 소개를 해주시니 '이런 시가 좋은 시구나'라고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학창 시절, 문학 시간에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억지로 시의 내용, 주제를 암기하는 게 재미도 없고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시가 이렇게 재미있는 장르구나'라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시인님이 곁에서 한 편, 한 편 시를 읽어주면서 그 의미를 천천히 알려주고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시인님과 마주 앉아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며 아름다운 시를 읽는 것 같아 책 속으로 풍덩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사랑, 청춘, 그리움, 외로움, 슬픔 등에 대한 시들을 읽으면서 세월에 따라 그저 무뎌져버렸던 저의 감정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이 책에 마지막으로 수록된 작품은 로버트 번스의 <올드 랭 사인>입니다. 시인님은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서로 손을 잡고 <올드 앤 사인>을 부르며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고 쓰셨는데요. 끝과 시작이 모두 들어간 노래처럼, 이 책이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이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나에게 영혼을 준 건 세 번째 사랑이었지>와 같은 최영미 시인님의 명시모음집이 꾸준히 출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시의 매력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고,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시를 더 행복하게 즐길 수 있도록 안내하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 덕분에, 올 가을은 쓸쓸하지 않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삶이 허무해지고, 한편으로는 괜히 눈물이 나는 이 가을에 이렇게 아름답고 감성적인 시들을 만나 저의 삶이 한층 더 빛나는 기분입니다.



 
나에게 영혼을 준 건 세 번째 사랑이었지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최영미 시인이 불과 꽃 같던 젊은 날을 뒤로하고 시간을 더듬어 읽은 시와 삶을 다독이며 풀어낸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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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해냄출판사
출판일
2024.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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